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오래 남을까

– 감정이 많은 사람의 심리 훈련 이야기
가끔은 내가 참 피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.
누군가 나에게 은근히 기분 나쁜 말을 했을 때,
그걸 그냥 흘려보내면 되는데
나는 꼭 그 말을 곱씹는다.
지난주에도 그랬다.
친구가 보낸 짧은 문자 하나.
겉으로는 아무 일 아닌 척했지만
속에서는 계속 뭔가가 뒤집혔다.
‘왜 저런 말을 하지?’
‘굳이 그렇게 말해야 했을까?’
낮에는 괜찮은 척 지냈는데
밤에 누워 있으니 생각이 더 커졌다.
결국 다른 친한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고,
나는 은근히 동조를 기대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.
그 순간, 또 한 번 실망했다.
‘아… 나 왜 이러지.’
괜히 스스로를 돌아보며 회개도 했다.
그런데 솔직히 말하면,
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런 소리도 들린다.
“아니, 상처 준 사람이 문제지
왜 내가 이렇게까지 나를 검열해야 해?”
맞는 말이다.
상처를 준 쪽이 분명히 있다.
그런데도 분은 쉽게 풀리지 않고,
그 감정은 계속 머릿속에 남아 나를 괴롭힌다.
나는 왜 이런 성격일까.
왜 한 번 걸린 감정이 이렇게 오래 갈까.
그래서 가끔은 이런 나 자체가 싫어진다.
심리학에서는 이런 사람을 뭐라고 할까
심리학에서는 이런 성향을
**‘감정 민감도가 높은 사람’**이라고 말한다.
이건 약함도, 문제도 아니다.
감정을 더 빨리 느끼고, 더 깊이 처리하는 사람일 뿐이다.
문제는 감정이 아니라
👉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훈련되지 않았을 때 생긴다.
최근에 본 한 영상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.
“싫은 감정도, 불편한 감각도
훈련을 하면 다룰 수 있다.”
그 말을 듣는데
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한 장면이 떠올랐다.
내가 못 먹는 음식 이야기
나는 한식, 양식은 정말 좋아한다.
일식도 괜찮고,
중식도 예전엔 못 먹었지만 지금은 잘 먹는다.
그런데 아직도
베트남 음식이나 타이 음식은 애매하다.
못 먹는 건 아니다.
그런데 누가
“베트남 쌀국수 먹을까?”
라고 말하면
내 속에서는 바로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.
“어… 싫은데.”
입으로는 말 안 해도
표정에서 이미 드러나는 것 같다.
그래서 친구들이
“그럼 다른 거 먹자” 하고
나에게 맞춰줄 때도 있고,
반대로 내가 맞춘다고 가서
젓가락만 몇 번 움직이다가
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한다.
“난 왜 이런 맛없는 걸
돈 주고 먹고 있지…”
그 순간의 나를 떠올리면
조금 부끄럽다.
감정도, 입맛도 훈련이라는 생각
영상에서 말한 ‘훈련’이라는 단어가
그때 딱 맞아떨어졌다.
생각해 보면
중식도 처음엔 싫었는데
지금은 잘 먹는다.
입맛도
노출되고, 익숙해지고, 경험이 쌓이면서 바뀌었다.
감정도 비슷하지 않을까.
기분 나쁜 말에 바로 반응하지 않고
조금 거리를 두는 연습.
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될 때
“아, 또 시작이네” 하고 알아차리는 연습.
억지로 참는 게 아니라
‘아직 익숙하지 않은 감정’으로 인식하는 것.
나는 문제가 아니라, 훈련 중이다
이제는 이렇게 말해보려고 한다.
나는 예민한 사람이 맞다.
감정을 오래 붙잡는 사람도 맞다.
하지만
그게 곧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.
아직 감정을 다루는 근육이 덜 단련된 것뿐이다.
싫은 음식을 단번에 좋아할 수 없듯이
불편한 감정도
한 번에 사라지지 않는다.
다만,
조금씩 익숙해질 수는 있다.
그래서 요즘은
스스로를 이렇게 불러본다.
“나는 문제아가 아니라
훈련 중인 사람이다.”
이렇게 생각하니
조금은 마음이 느슨해진다.